1. 의미
사람들은 눈앞에 있는 음식에는 많은 관심을 가지지만 정 작 입으로 들어간 이후로는 별 관심이 없다. 그저 '영양분은 흡수되고 남은 찌꺼기는 변으로 나오겠거니' 정도로만 생각 한다.
맞는 말이다. 인간의 정신이 먹을 것을 탐닉하고 쾌감을 느 낀 후에는 소화기관이 남은 음식 뒤처리를 한다. 이때부터는 영양소와 수분을 얼마나 소화하고 흡수할 수 있는지, 남은 찌꺼기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문제다. 이 일거리 들을 별 탈 없이 분해하고 소화하고 배설해내기 위해 소화기 관은 근육을 움직이는 연동운동으로 음식을 부지런히 옮기 고, 여러 소화 효소를 동원해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을 작은 분자로 쪼갠다. 하지만 인간의 소화력은 우리가 밥을 먹는 동 안의 요란스러움에 비하면 한없이 겸손하다. 소화관의 길이 는 약 12미터에 달할 정도로 길다. 우리가 먹은 음식은 이 긴 통로를 1분에 2.5센티미터씩 천천히 지나간다. 음식을 먹으 면 곧바로 변의를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음식물은 생각보 다 훨씬 우리 몸속에 오래 머물다 나온다. 먹은 음식이 입에 서 항문으로 나오기까지 남자는 대략 55시간, 여자는 72시간 이 걸린다.
인류 역사를 되짚어보면 우리는 '기아의 역사'를 살아왔다 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먹을 것은 항상 부족했고, 먹을 것 을 구하기 위해 집을 나서면 언제 돌아올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소화기관은 적은 양의 음식에서도 영양분을 알뜰하게 흡수해 육체가 생존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 음식의 영양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흡수하기 위해 많은 종류의 소화 효소를 분비하고 천천히 움직여 소화되는 시간을 늘렸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 우리는 이전과 전혀 다른 양상의 식습 관을 가지게 됐다. 더 많은 양의 음식을 더 자주, 빠르게 위장으로 넣고 있으며 이전에 많이 접해본 적 없는 온갖 화학조미 료와 열량만 가득한 음식들을 섭취하고 있다. 자극적이고 영 양학적으로도 형편없는 음식을 먹는 이러한 식습관이 현재의 소화 기관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탓에 결국 위장과 소화 효소 의 능력 한계로 우리는 자주 탈이 난다. 이때 우리가 찾는 약 이 바로 소화제다. 감기약과 더불어 약국에서 제일 많이 팔리 는 약 중 하나이기도 하다.
2. 종류
사람들은 배탈이 나거나 복통이 있거나 가스가 차서 더부룩할 때 먹는 약을 모두 '소화제'라고 부른다. 약국 에 가면 항상 증상과 통증의 정도를 상세하게 말해주는 것이 좋다. 정 확하게 말할수록 적합한 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
가장 먼저 일반적으로 약국에서 파는 알약 소화제는 우리가 잘 알 고 있는 훼스탈, 베아제 등으로 대부분 소화 효소제다. 과식과 소화 효소 부족으로 인한 소화불량에 효과적이다. 소화 효소제의 원리는 간단하다. 위장이 만들어낸 소화 효소를 외부에서 추가로 공급해 음 식물의 분해와 소화를 돕는 일꾼을 더 들이는 방식이다. 판크레아 틴pancreatin, 리파아제lipase, 비오디아스타제biodiastase, 프로자임 prozyme, 판프로신panprosin 등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분해 작용 을 하는 효소들이 들어 있다. 속이 아픈데 위산 과다 분비로 쓰린 쪽 에 가깝다면 소화 효소제보다는 제산제인 겔포스, 트리겔, 개비스콘, 알마겔이나 위산분비억제제인 파미딘정이 더 효과적이다.
가스가 많이 생성돼 속이 더부룩하고 복부가 팽만한 느낌이 들 때 는 가스제거제인 까스앤프리를 사용하는 것이 좋은데, 보통 시메티콘 simethicone이나 디메티콘dimethicone이 들어간 약을 처방한다. 가스제거제는 더부룩한 속을 달랠 때도 복용하지만 위내시경을 할 때도 복용한다. 위내시경을 하기 전에 가스를 제거하는 목적으로 먹는 약 이 시메티콘이다.
과식 후 설사나 묽은 변이 나올 경우 정장제인 락토딘캡슐을 주기 도 한다. 정장제에는 우리가 영양제로도 먹는 유산균이 들어 있다. 장 내에 서식하는 유해균의 증식을 유산균이 막아줘서 설사와 복통을 줄일 수 있다. 설사를 하면서 배가 아프다면 지사제인 로페리놀에스 캡슐, 로이디펜캡슐, 자이드캡슐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 지사제에는 베르베린berberine, 니푸록사지드nifuroxazide 같이 유해 성분을 흡착 시키는 성분이나 복통을 줄여주는 성분인 스코폴리아scopolia, 항균 작용을 하는 아크리놀acrinol 등이 있다.
마시는 소화제 역시 빠뜨릴 수 없는데,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까스활명수, 생록천, 베나치오 등은 감초, 계피, 회향, 정향 등 생약 성분이 들어간 소화제다. 이 생약들은 한방학에서 체기가 있을 때 소 화를 도와준다고 알려져 있으며 마시는 소화제와 알약 소화제를 함 께 복용하면 효과가 좋다. 속이 메슥거리고 구토감이 있으면 돔페리 돈 성분의 멕시롱액을 처방하기도 한다.
3. 까스활명수
까스활명수는 가장 유명한 마시는 소화제다. 비슷한 성분의 소화 제가 많지만 '소화제' 하면 역시 까스활명수라 할 정도로 인지도가 높 다. "부채표가 없는 것은 활명수가 아닙니다"라는 마케팅 덕분에 지 금도 소화제를 찾는 어르신 중에는 부채표를 달라고 하기도 하고, 소 화제를 구매한 후 부채표를 확인하는 분들도 있다.
활명수는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는 뜻이다. 사실 소화제라고 하기 에는 다소 거창해 보이기도 하지만, 과거 조선시대에는 급체나 토사 곽란(토하고 설사하며 배가 심하게 아픈 증상)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많아 왕들이 마시는 귀한 약 중 하나였다. 그런 점에서 보면 뜻이 마냥 거 창해 보이지만도 않다.
이 활명수 생약의 비방을 민간에게 널리 보급한 사람은 당시 대한 제국 궁중 선전관으로 있던 민병호 선생이다. 1897년 서울 순화동에 동화약방을 차리고 활명수 판매를 시작했다. 생약 성분에 탄산가스와 서양 약물에 쓰이던 기술을 접목해 오늘날 활명수가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약이자 양약이라 할 수 있다.